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2차 세계 대전/발단 (문단 편집) === 각국의 사정 === * 영국&프랑스: 전쟁 일어나기 가장 싫어한 국가들 중 대표이자 본좌, 둘 다 자국에서 반전여론이 강했고 전쟁 일어나봐야 좋을 것이 없었기에, 특히 프랑스는 참호전의 악몽에 독일의 바로 이웃나라였기에 더 일어나지 않게 하려고 했다. 대독 포위망도 프랑스가 먼저 제시했을 정도. 다만 그 전쟁을 피하자고 하는 정도가 너무 심해 문제가 너무 많았다. 첫째로 프랑스가 강하게 주장한 대독포위망은 '''프랑스가 공격받는 것'''을 전제로 했다. 즉 대독포위망 참여국이 독일의 뒤통수를 쳐주는 것만 생각했지 정작 프랑스 스스로가 다른 대독포위망 국가가 공격받을 때 지원 가 줄 생각은 없었다는 소리. 두 번째로 프랑스나 영국이나 너무 소극적이고 눈치를 보다가 시간만 날려먹었다. 이당시 독일을 효율적으로 견제하기 위해선 프랑스, 영국 양측의 협력과 독일을 향한 압박이 필요했는데 문제는 이런 와중에 양국이 협력은커녕 서로간의 견제와 눈치싸움만 했다는 것. 이때문에 상술한 대독포위망 중 하나인 체코슬로바키아가 뮌헨 협정에서 갈기갈기 찢기고 이후 전역이 점령당하는 것을 방관하고 말았다.[* 단 체코슬로바키아 분할이 영국과 프랑스가 전쟁 대비를 하는 계기가 되기는 했다.] 이후 폴란드가 침략당할 때도 양면전선으로 폴란드 구원과 독일 약화를 동시에 이룰 수 있는 상황인데 '''이를 방치했다.''' 물론 이땐 나름의 사정이 있긴 했지만 결국은 약간의 지원조차 하지 않아 사실상 방관했고 결국 영국&프랑스가 자기들 나름 뭘 해보겠다고 한 것 전부 제대로 이루어지지도 않은 사상누각 상태였으며 결국 개박살나고 독일의 저력을 키워주는 역효과만 만들었고 독일은 이를 통해 얻은 저력을 추진력 삼아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정확히는 이로 인한 영향력강화 외에도, 백색 전쟁을 보고 소련을 만만하게 보게 된 것 등등 이후에 추가된 몇 요인도 합쳐지긴 했다.] 결국 이렇게 자국의 피해를 받지 않게 하려는 뻘짓들은 2차 세계 대전 당시 프랑스 점령과 [[영국 본토 항공전]] 및 끊임없는 위협 등으로 되돌려받았다. * 폴란드: 이쪽도 독일과 전쟁 나기는 썩 좋아하지 않았던 나라. 그도 그럴 게 123년 동안 독일, 오스트리아, 러시아에게 나라가 3분되어 찢겼다가 제1차 세계대전으로 부활한 사례였기에 당연히 독일을 좋아할 턱이 없었다. 문제는 지배국 중 하나가 소련인 만큼 소련도 싫어했는데 소련이야 영국, 프랑스도 싫어했으니 이렇게만 보면 별 볼일 없는 문제(?) 였으나 문제는 독일과만 맞닿은 영프와 달리 폴란드는 '''나라 양쪽으로 그 혐오스런 족속들과 맞닿은 상태'''라는 것. [[폴란드 침공]] 직전 소련은 영프와 협상에서 폴란드가 자국군의 진주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폴란드는 일단 소련군이 한번 들어면 소련이 줄창 영유권을 제기하는 동부 크레시(Kresy)에서 절대 제발로 떠나지 않고 점령군 행세를 할게 분명했으므로 제의를 뿌리쳤다.[* 폴란드가 미쳤다고 이런 생각을 한게 아니다. [[루마니아 왕국]]과 [[핀란드]]도 같은 요구를 받았는데 전자는 소련의 목표가 사실상 [[베사라비아]]의 점령에 있다고 보고, 후자는 아예 대놓고 영토 할양을 요구받자 거절했다. 세 나라의 공통점은 [[볼셰비키]]와 거나하게 싸운 적이 있다는 점.] 아이러니한 건 이런 일이 벌어지기 약 1년 전에 프랑스의 제안으로 들어간 대독일 포위망 구성국 중 하나면서도 같은 구성국인 체코슬로바키아의 땅을 독일, 헝가리와 함께 분할했다는 것이다. * 벨기에: 역시 독일과의 전쟁은 꺼렸다. 하지만 [[라인란트 재무장]]이 일어났을 때 프랑스가 용인해버리자 프랑스를 불신하고 중립국으로 회귀, 그러다가 서서히 전운이 감돌자 다시 프랑스와 협력했지만 결국 프랑스와 사이좋게 점령당한다. 옆 나라 네덜란드도 마찬가지. * 체코슬로바키아: 분명 대독일 포위망 구성국이자 프랑스의 동맹국인데도 정작 영국과 프랑스에게 철저하게 버림받았다. 더 큰 문제는 그 비극은 또 체코슬로바키아 탓이 아니라 [[베르사유 조약]]과 [[민족자결주의]] 사이에서의 불합리의 결과물로 [[민족자결주의]]에 따르면 독일인의 땅은 모두 독일의 땅이어야 하지만 1차대전의 연합국은 독일을 약화시키기 위해서 일부 지역은 떼어다가 새 독립국의 영토로 삼아줬는데 체코슬로바키아가 그 사례였던 것이다. 체코슬로바키아는 뭘 잘못한 것도 아닌데 고생했다.[* 게다가 나치 독일이 패망해 물러가자 소련의 영향권으로 들어 또다시 시달림을 받았다.] * 소련: 이 쪽도 이 당시 국외로 떨친 영향력에 비해선 대숙청으로 인해 상황이 좋지 않아 당연히 독일과의 재전은 꺼렸다. 문제는 독일을 압박하기 위해 영국, 프랑스, 폴란드 3국에 협력을 제안했으나 이 3국 모두 괜히 손잡았다가 오히려 독일이 터질 거라 겁먹는 바람에 소련의 제안을 무시해버렸고 결국 이들에게 무시당한 소련은 별 수 없이 자기가 견제하려던 독일과 불가침조약을 맺게 되었으나 이 마저 [[겨울전쟁]]을 본 히틀러의 인식으로 호구 취급받으며 침략당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